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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하 시인, 하늘이 화려한 옷을 입었네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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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 44
  • 2026.09.20 21:34
           ▲ 하늘시인 이영하
 
 
 
하늘이 화려한 옷을 입었네
 
(시인 이영하)
 
 
해 뜨기 삼십 분 전
하늘이 먼저 옷을 꺼내 입었다.
아직 해는 오지 않았는데
구름 한 자락이 붉은 비단을 걸치고
먼 산 위로 천천히 소매를 펼친다.
 
삼 분쯤 지났을까
아까의 하늘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이번에는 연분홍 저고리 한 벌이
동쪽 하늘에 걸려 있다.
 
또 몇 분.
붉은빛 사이로 보랏빛이 스며들더니
구름의 가장자리는 금실을 두른 듯 반짝인다.
 
나는 걸음을 멈춘다.
오늘 하늘은 누구에게 초대장을 보낸 것일까.
사람 하나 없는 새벽길에서
혼자 옷을 갈아입는 하늘을 나는 자꾸만 바라본다.
그러다 문득 해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눈부신 햇살 한 줄이 동쪽 구름을 밀어 올리자
조금 전까지 붉은 비단을 걸쳤던 하늘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푸른 옷으로 갈아입는다.
 
아름다움은 붙잡아 두는 것이 아니었던가.
하늘은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가장 먼저 벗어 버린다.
그리고 또 다른 빛을 입는다.
 
나는 다시 걷는다.
오늘 하루도
한 벌의 마음에만 머물지 말라고
새벽하늘이
내 앞에서 먼저 옷을 갈아입는다.
 
 
(시작 노트)
 
새벽길을 걸으며 하늘을 오래 바라보는 날이 많았습니다. 해가 떠오르기 직전의 하늘은 몇 분 사이에도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 주었습니다. 붉은 여명 위에 구름이 걸리고, 분홍빛과 보랏빛이 번지고, 어느 순간 금빛이 스며들다가 햇살이 모습을 드러내면 조금 전의 화려함을 모두 내려놓은 듯 푸른 하늘로 돌아갔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하늘이 마치 하루에도 몇 번씩 옷을 갈아입는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하늘은 아름다움을 붙잡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가장 눈부신 순간조차 미련 없이 벗어 버리고 또 다른 빛을 받아들였습니다.
 
이 시는 그 새벽의 짧은 관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나는 하늘의 변화 속에서 아름다움의 본질뿐 아니라 사람의 삶도 함께 떠올렸습니다. 우리는 때로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을 붙잡고 싶어 하지만, 삶은 계속 새로운 빛으로 옷을 갈아입습니다. 어제의 모습에 머물지 않고 오늘의 빛을 받아들이는 것 또한 살아가는 한 방식일 것입니다.
 
새벽하늘의 옷을 바라보며 쓴 이 시가 독자들에게도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자신의 하루를 바라보는 작은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천당과 지옥의 젓가락질
 
 
(시인 이영하)
 
 
천당과 지옥에는 똑같이 긴 젓가락이 있다는 이야기를
어릴 적부터 들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천당의 젓가락이 지옥보다 더 길었다.
 
천당에 앉은 사람들은
그 긴 젓가락으로 제 입에 음식을 넣지 않았다.
맞은편 사람의 입에 한 젓가락씩 건네주었다.
“자네, 이것 좀 드시게.”
그러면 건너편에서도 “당신도 한 술 뜨시오.”
긴 젓가락이 서로의 입 사이를 오갔다.
밥은 줄지 않았고 웃음은 자꾸 늘었다.
 
그런데 지옥은 젓가락이 오히려 짧았다.
그래서 모두 제 앞의 음식을 향해 팔을 길게 뻗었다.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으려고 서로의 그릇을 끌어당기고
젓가락 끝을 세우고 입보다 욕심을 먼저 내밀었다.
하지만 짧은 젓가락은 제 입까지 닿지 않았다.
 
음식은 눈앞에 넘쳤는데
사람들의 얼굴은 자꾸 야위어 갔다.
나는 그 이야기를 떠올리며
요즘의 세상을 가만히 바라본다.
어쩌면 천당과 지옥을 가르는 것은
젓가락의 길이가 아닐지도 모른다.
내 앞의 밥을 누구의 입에 먼저 놓느냐,
내 손에 쥔 것을 얼마나 움켜쥐느냐,
그 차이가 사람의 식탁을 바꾸는 것은 아닐까.
천당의 긴 젓가락은 서로에게 닿았고
지옥의 짧은 젓가락은 끝내 자기 자신에게도 닿지 못했다.
 
오늘 아침 나는 식탁 앞에서
젓가락 하나를 든다.
그리고 먼저 마주 앉은 사람의 그릇을 바라본다.
 
 
(시작 노트)
 
어릴 적부터 천당과 지옥의 젓가락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천당에도 지옥에도 긴 젓가락이 놓여 있지만, 천당의 사람들은 그 젓가락으로 서로의 입에 음식을 넣어 주어 모두가 배부르고 건강하게 살아가고, 지옥의 사람들은 자기 입에만 음식을 넣으려 하다가 결국 아무것도 제대로 먹지 못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그 이야기가 우습고 재미있는 우화처럼 들렸습니다. 그러나 세월을 살아오면서 그 짧은 이야기가 사람과 사회를 바라보는 하나의 거울처럼 느껴졌습니다.
 
천당과 지옥을 가르는 것은 어쩌면 장소가 아니라 젓가락을 어느 쪽으로 향하느냐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같은 음식과 같은 젓가락이 주어져도 그것을 자기에게만 가져가려 하면 부족함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 건네면 함께 누릴 수 있는 풍요가 됩니다.
 
이 시에서는 오래된 우화의 재미를 살리면서도, 그것을 오늘의 삶으로 가져와 보았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의 크기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누구와 나누느냐는 사실, 그리고 타인을 배려하는 작은 행동 하나가 공동체의 온도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담았습니다.
 
특히 마지막에는 거창한 교훈을 덧붙이기보다, 평범한 식탁에서 젓가락 하나를 드는 순간 독자 스스로 그 방향을 생각해 보기를 바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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